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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wsing by Subject "Catholic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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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민구 (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2014-12)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는 103위 성인이 있다. 그런데 사실 103위는 기해박해(1839)와 병오박해(1846) 순교자 79위와 병인박해(1866) 순교자 24위가 합쳐진 것이다. 원래는 별도의 시복 건이었으며, 79위 순교자는 1925년에 시복되고 24위 순교자는 1968년에 시복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성을 추진하면서 103위 시성 건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진행되었고, 마침내 1984년 ...
  • AN PONG-HWAN (신학연구소, 2016-06)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사제 복장은 어떠하였을까? 성직자의 신분과 품위에 맞지 않는 복장이 11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성직자들이 사치스럽고 화려한 복장을 입고 다니며 물의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비난하면서 내적 미덕의 품위를 통해 신자들에게 감화를 주도록 권하였다. 그의 영향을 받아 개최된 교회회의들은 성직자들의 복장은 성직자들이 갖춘 미덕의 외적 표지임을 강조하였다. ...
  • Kwak, Moonseok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Church History, 2017-12)
    이 논문은 《페르시아어 디아테사론》과 《페르시아어 사복음서》의 관계를 해명하는 글이다. 먼저, 두 역본 간의 역사적 배경이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두 문헌의 서문과 간기(刊記)를 분석하였고, 그 내용을 시리아어로 기록된 몽골 제국 시기의 역사적 기록물들과 비교하였다. 그들은 바르헤브라이우스(BarHebraeus)의 역사서와 야흐발라하 3세(Yahballaha III)와 랍반 ...
  • Kim Hyun-Tae (The Society of Theology and Thought, 1991-12)
  • AN PONG-HWAN (CATHOLIC THEOLOGICAL ASSOCIATION OF KOREA, 2016-06)
    13세기 후반부터 15세기까지 사제는 평소에 어떤 복장을 하고 다녔을까? 당시의 교회는 사제 복장에 관해서 어떤 규정을 내세웠을까?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를 통해 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centius III, 1198-1216)가 공포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오 9세(1227-1241)의 「법령집」 안에 수집된 규정들 이후로 많은 지역 공의회는 사제 복장과 관련해서 장백의를 성직자의 ...
  • Kim,Tae-HYUNG (CATHOLIC THEOLOGICAL ASSOCIATION OF KOREA, 2003-06)
  • 김혜경 (Sogang University Institute for Theology, 2010-11)
    이 논문은 예수회가 16~17세기 동아시아에서 펼친 ‘적응주의 선교 정책’의 의의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수회는 종교개혁의 거센 물결이 유럽을 강타하던 시기에 창설되었다. 유럽에서는 설립초기부터 교회를 지적 · 영적으로 쇄신했고, 휴머니즘과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교육의 커리큘럼을 개혁했으며, 보호권과 종교개혁에 대응하여 교회가 진정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였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
  • AN PONG-HWAN (CATHOLIC THEOLOGICAL ASSOCIATION OF KOREA, 2016-12)
    16세기에 사제가 입던 평상복은 어떠하였을까? 당시의 교회는 사제 복장에 관해서 어떤 규정을 내세웠을까?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2~1517)에서 레오 10세는 교황령 『수페르네 디스포지시오니스』(Supernae dispositionis, 1514.5.5.)를 반포하였다. 이 문헌에서는 고위 성직자의 가솔(familia)을 구성하는 성직자들의 복장과 관련된 규정을 다루고 있다. 특히 사제들에게 ...
  • Hyejin JHANG (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2019-12)
    일본 전통사회 속에서의 그리스도교는 이문화성이 강한 새로운 유입 종교였고, 따라서 예수회에서 동아시아 선교활동에 있어서 대외 전략으로 세웠던 방침이 ‘적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응’에 대한 논리는 그리스도교 선교사 안에서 특정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크며, 철저히 교회 내부적인 시점에서 언급되고 있다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 나가사키는 전 근대시기에 있어서 예수회의 ...
  • Yoo-seung Jang (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2014-06)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수기》(隨記)는 정조 어찰에 대한 박종악(朴宗岳)의 답장을 옮겨적은 책으로, 초기 천주교회사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신해박해 당시의 기록으로, 충청도 내포(內浦) 천주교회의 조사를 책임진 충청도 관찰사 박종악이 국왕에게 직접 보고한 것이다. 따라서 《수기》는 그간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의지해 왔던 초기 교회사 연구에 ...
  • Kim jin woo (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2023-12)
    본고는 1791년 윤지충의 거상을 고찰하고 그 성격을 종법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당시 사족들의 반발 원인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윤지충 거상에 관한 관찬과 사찬 기록에 따르면 그는 상복을 온전하게 입지 못하고 전을 올리지도 않았다. 아울러 조문객에게 곡을 하면서 응대하지 못하였고 장례를 늦게 지냈다. 그뿐만 아니라 윤지충은 신주도 만들지 않았다. 반면 윤지충이 유교 상례 규정에 맞게 실천한 부분도 ...
  • Kim Young Chan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Church History, 2015-12)
    중국에서 활동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 현지 문화와 언어에 대한 적응을 중시했고 이에 따라 중국어를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들은 특히 발음 정보를 주지 않는 한자의 발음을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유럽 문자로 한자 발음을 표기하는 체계를 고안하여 사용하였다. 그러한 체계는 17세기에 간행된 문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에 간행된 관련 문건으로는 ...
  • Lee, Younseung (Sogang University Institute for Theology, 2012-11)
    명말청초 중국 천주교사에 대한 연구는 마테오 리치와『천주실의』및 그의 적응주의적 선교 노선, 천주교와 유교의 관계에 대한 보유론적 天儒觀 등에 집중되어 왔는데, 이는 그의 적응주의적 선교 노선이 가져왔던 영향력이나 서학에 관련된 다양한 논변들이 대체로『천주실의』에 보이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주로 청대 초기 漢人 입교자인 張星曜(1633 ...
  • AN PONG-HWAN (신학연구소, 2017-06)
    17세기의 사제 복장은 어떠하였을까? 트렌토 공의회 이후 성직자들은 장소와 상황을 고려해 허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밀라노 대주교 카를로 보로메오가 제시한 성직자 복장의 색깔 규정에 따라 검은색 긴 겉옷(vestis talaris 또는 cassock)을 입고 다녀야 했다. 그렇지만 17세기부터 성직자 복장 형태와 관련된 규정은 유럽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개별법에 ...
  • 이석원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Church History, 2011-12)
    1831년 조선대목구의 설정은 로마가톨릭(천주교)의 동아시아 선교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교황청의 포교성은 조선대목구 설정을 계기로 중국에서 포르투갈의 보호권을 축소하고 대목구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실제로 포교성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요청에 따라 1838년 요동대목구를 북경교구에서 분리했으며 1840년대 이후 중국 내륙에도 대목구를 증설하여 직접 중국 선교를 통괄하는데 성공하였다. ...
  • Lee, Seok-won (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2019-06)
    1834년 초 입국한 이래 1836년 말까지 조선에서 활동했던 중국인 여항덕 신부는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의 선교 방침을 기본적으로 준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 신부는 주변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주문모 신부보다 더 신중하고 엄격한 성사 집전 방침을 관철해 나갔다. 어느 정도 교회 체계가 잡혀가자 여항덕 신부와 조선 신자들은 가옥을 구입하여 공소를 설립했는데, 이는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성사 ...
  • LEE SEOK WON (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2020-06)
    이 글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 사제들의 서한과 신자들의 증언, 관찬 자료, 『벽위편』, 족보 자료를 정리·분석하여 김익례 가족의 생애와 순교 과정을 재구성한 것이다. 1839년부터 1868년까지 김익례 가족 중 10명이 순교했으나 현재까지 관련 자료가 정리되고 약전이 저술된 것은 김면호가 유일하다. 따라서 김면호를 포함한 김익례 가족의 역사를 정리하고 가계도를 작성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
  • Doh, Jin-soon; Nam, Ji-Woo (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2021-12)
    1842년 2월 마카오에서 조선 신학생 김대건이 세실(J.-B. Cécille) 함장의프랑스 군함 에리곤(Érigone)호에 탑승하였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없으며, 그리하여 기초적인 항해 여정에 대해서도 착오가 적지 않다. 본 연구에서는 에리곤호의 항해 여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항해일지(Campagne dans les mers de l’Inde et de la Chine, à ...
  • 방상근 (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2013-06)
    이 글은 주로 1850년대 조선에 설립된 신학교의 설립 과정과 성격을 다룬 연구이다. 특히 2005년부터 제기된 정식 신학교의 출현 시점과 관련하여, 기존의 주장과 자료들을 재검토했고, 이를 통해 1850년대 설립된 신학교들의 성격을 정리해 보았다. 그 결과 1850년에 정식 신학교가 등장했다는 연구에 대해, 1855년 메스트르 신부가 세운 배론 신학교가 정식 신학교였다는 2005년 이전의 ...
  • 최인각 (CATHOLIC THEOLOGICAL ASSOCIATION OF KOREA, 2010-12)
    조선대목구의 4대 교구장인 베르뇌 주교는 1857년 한국 최초의 시노드(성직자 회의)를 개최하여 사목서한 <장주교윤시제우서>(張主敎輪示諸友書)를 발표하였다. 베르뇌 주교는 시노드의 결과를 효과있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부들이 시노드 결과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올바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베르뇌 주교는 영혼의 목자들을 위한 안내서, 즉 사제들의 지침서를 준비하여 185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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